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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앙코르 왓 그리고 씨엠립 PART 1 20170808TRAVEL 2021. 8. 23. 11:52
언젠가는 꼭 가봐야 할 곳.
캄보디아의 유적지 앙코르 왓.
그래서 씨엠립 공항으로 출발했다.
오후 비행기라 석양을 볼 수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해가 지고 있다.
저녁 비행기의 장점은 하늘 위에서 일몰을 볼 수 있다.
저녁 늦게 씨엠립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이 정말 작아서 귀엽게 느껴진다.
도착비자 발급을 위해 줄을 섰다. 말로만 듣던 1$를 절대 뺏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비행기 안에서 영문 대문자로 모든 항목을 채웠다.
도착비자 발급을 위해서는 30$와 여권 사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하나라도 틀리거나 부족하면 그냥 1~2$를 주는 게 편하다.
필자는 두 눈을 부릅뜨고 공무원을 쳐다보았다. 나에게는 1$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많이 보였는데 중국인들도 많이 삥 뜯겼다.
한국인에게만 1$를 요구하는 건 아닌 듯하다.
1$는 이들에게 '급행료'로 서비스의 대가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아무튼 무사히(?) 입국절차를 마치고 호텔로 갔다.
다음날 아침에 예약했던 가이드를 만났다.
사전에 일정을 조율했기에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바로 툭툭이를 타고 앙코르 유적지로 향했다.
오늘 일정은
오전 ; 앙코르 유적지 북부 지역
쁘레아 칸 -> 네악 뽀악 -> 따 솜 -> 동 메본
오후 ; 앙코르 톰
앙코르의 유적 여행은 역사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해를 해야 한다.
앙코르 왕국 시기 : 802년 ~ 1431년
강력한 정교일치 사회, 신왕사상이 통치 이념.
(한국 : 후삼국시부터 초기 조선.)
(몽골 칭기즈칸 : 13세기)
(유럽 : 중세 말기에서 르네상스 초기)
종교
초기에는 힌두교 자야바르만 7세부터 불교였으나
자야바르만 8세(1215년 이후)로 불교 탄압.
(불상 부조가 훼손됨.)
14세기 이후로는 소승불교의 세력이 확장되어 현재는 국교임.
소승불교는 대승불교에서 격하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남방불교와 북방불교가 대별 명칭이다.
우리나라에는 북방불교(대승불교)의 영향권이다.
남방불교와 대승불교의 가장 큰 차이는
깨달음과 믿음(유신론)에 있다.
멸망
1431년
아유타야 왕국(현재 태국) 1차 침공으로 굴복.
이듬해 다시 앙코르 왓으로 진격하였으나
100만이나 되었던 앙코르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전염병설, 이주설, 외계인설 등이 있다.
앙코르 유적의 용어를 알아두면 대략적인 의미를 알 수 있다.
쁘레아 : 신성한.
톰 : 거대한.
왓 : 사원, 절.
반띠에이 : 성채.
프놈 : 산.
쁘라삿 : 위대한, 탑.
앙코르 유적지 매표소.
이곳에서 표를 구매하고 앙코르 유적지까지 1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일일(1일)권 37$
삼일(3일)권 62$
칠일(7일)권 72$
(캄보디아 시민은 프리 패스라고 한다. 여행객들만 구매해야 한다.)
쁘레아 칸 입구.
1191년 자야바르만 7세 축성.
쁘레아 칸은 '신성한 칼'이라는 의미이다.
이끼와 부조만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앙코르 유적지는 지금까지도 복원 중이다.
바닥에 있는 돌들은 대부분 복원이 안 된 것이다.
중앙 스투파
앙코르 초기 유적은 힌두교 사원이지만 후기 유적은 불교 유적이다.
스투파는 '사리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회랑
복원 중인 외벽이다.
역시 복원 중.
무엇인지 모르겠다.
역시 무엇인지 모르겠다.
동쪽 고푸라
고푸라는 탑 형태의 출입문을 일컫는다.
앙코르 톰의 해자.
쁘레아 칸과 앙코르 톰은 가까이에 있어 앙코르 톰의 해자를 볼 수 있다.
해자는 속세와 성역의 경계라고 이해하면 된다.
따 솜 입구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
사면상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반겨준다.
앙코르 왕국의 최전성기 시대인 자야바르만 7세는 정통성이 부족한 왕이었다.
'데바 라자'를 받지 않은 왕이다. '데바 라자'란 '신왕'이란 뜻으로 데바 라자 의식을 받으면
누구라도 왕이 될 수 있었다. 일종의 신의 화신, 은총을 받는 의식인 것 같다.
자야바르만 7세는 불교식 '부다 라자'를 거행하고 불왕이 된다.
당시에 불교는 서민 종교였고 힌두교는 여전히 상류층, 통치 이념이었다.
지방 호족, 왕족, 브라만 계급의 지지보다는 일반 백성들이 자야바르만 7세의
지지 세력이었을 것이다.
사진에는 없지만 '네악 뽀안'은 백성들을 위한 병원이었다.
더불어 자야바르만 7세 시기에 축성된 사원 및 건축은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앙코르 왕국의 모든 왕은 '바르만'이다.
'바르만'은 '보호를 받는 자'라는 뜻이다.
'자야'는 '승리'를 의미한다.
자야바르만 7세는 참파(현재 베트남)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아무튼 누구나 왕이 될 수 있었던 까닭에 앙코르 왕국은 전쟁, 찬탈과 분열을 반복하였다.
동쪽 고푸라
동쪽 고푸라
나무가 멋들어지게 보인다. 하지만 사원이 무너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누군가 길 위에 그렸다.
외각으로 걷다 보면 아직 복원되지 않은 돌들이 많이 보인다.
툭툭을 타고 이동하면서 거대한 목욕탕인 '스라 스랑'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은 패스~
점심을 먹기 위해 '펍 스트리트'로 이동하였다.(후에 올드 마켓, 펍 스크리트, 나이트 마켓을 관해 적도록 하겠다.)
오후에는 '앙코르 톰'을 걸었다.
오후 일정 ; 앙코르 톰
남문 -> 바이욘 -> 바푸온 -> 파미엔나카스 -> 왕궁 터 ->
쁘레아 빨릴라이 -> 코끼리 테라스, 문둥왕 테라스 -> 프놈 바켕(일몰)
'바이욘' 같은데 잘 기억이...^^
사면상
코끼리와 뱀은 왕을 상징한다.
바이욘
1191년 자야바르만 7세.
앙코르 유적지 하면 '앙코르 톰'과 '앙코르 왓'이 가장 유명하다.
'유명하다.'란 의미는 관광객들이 많다는 뜻이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 정말 많다.
1층 회랑의 부조.
1층 회랑의 부조.
사면상
습도가 높아 매우 덥다.
바이욘 3층 '크메르의 미소'
바이욘 3층
바이욘 3층은 그늘이 거의 없다.
바이욘을 오후에 가면 땀범벅이 된다.
바푸온과 코끼리 테라스 등은 툭툭이로 둘러보았다.
걸어 다니다가 탈수증으로 쓰러질 뻔했다.
거짓말 안 하고 손가락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프놈 바켕'에서 일몰도 봐야 하는데....
목숨이 먼저 이므로 호텔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했다.
- 앙코르 왓 그리고 씨엠립. PART 1 끝 -
- 앙코르 왓 그리고 씨엠립. PART 2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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